[데스크 칼럼] 옛 추억의 소환 ‘삶은 감자’ 한 알
[데스크 칼럼] 옛 추억의 소환 ‘삶은 감자’ 한 알
  • 이완재 기자
  • 승인 2018.10.30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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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팩트 칼럼] 유난스럽던 광기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옷깃을 여미게 하는 늦가을이다. 겨울이 머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기온 현상이 체감으로 전달되는 요즘, 봄과 가을은 짧다. 꽃과 단풍이 피고 지는 기쁨이 점점 찰나가 돼 가고 있어 슬프다. 모든 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저지른 자업자득이라 씁쓸하다. 이 또한 한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관령 넘어 영동(嶺東)의 명산 설악의 단풍이 절정이라더니 집 근처 가로수들도 울긋불긋 아름답다. 봄부터 여름 내내 푸르던 나뭇잎들이 물감에 적신 듯 곱게 변색하니, 저만한 아름다운 환골탈태가 또 있을까.

우리 인간도 종종 변화를 꾀할 때 나무를 닮았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쉽게도 추하거나 잘못 된 길로 접어드는 일이 다반사다. 차라리 어설픈 변화를 택하느니 예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단풍으로 거듭나는 나무는 참 훌륭한 변신의 귀재다.

그 가을단풍이 짧은 가을을 지나며 속절없이 지고 있다. 가을비, 바람을 맞고 후두둑 지상으로 낙하하며 이별을 고한다.

가을의 퇴장이 못내 아쉬워 압력솥에 감자 몇 알을 삶는다. 가을에 취해 한껏 센치해져 급 허해진 감정의 공복을 메꿀 감자를 기대하며. 얼마 전 강원도 양양 여행길에 영북 제일의 5일장인 양양장터에 들러 사온 감자다. 엿날 시골에서 어머니가 하던대로 밥솥안 쌀 위에 감자를 올려 찐다. 어머니는 큰 무쇠가마솥에 불을 때 고구마며 감자를 삶아주셨지만, 아파트 주방에서 그것을 대체하기엔 가스불을 피워 찔 수 있는 압력솥이 제격이다.

한 30여분을 기다렸을까. 요란한 휘파람 소리를 내면 돌던 추가 멈추고 10분여 뜸을 들이고 나니, 감자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압력솥을 여니 유년 시절 고향 부뚜막에서 맡던 냄새가 훅 하고 콧속으로 파고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짜릿한 전율과 함께 옅은 감탄사가 터진다. 유년의 그 냄새가 시공간을 훌쩍 넘어 중년의 꼬 끝을 간지럽힌 순간 잠자던 미각도 함께 깨어난다.

경험에 따르면 수확기 감자를 캔 후 일정 기간 실온에 보관하면 특유의 알알한 독성이 감자에 배게 된다. 그 알알한 냄새가 뜸이 든 밥 냄새와 섞여 풀풀 풍기면 한껏 식욕을 자극한다. 활동성이 둔해진 중년의 뇌에도 그 냄새만큼은 기억 한 켠에 오래도록 저장 돼 있었나보다. 어제런듯 족집게처럼 또렷하게 소환해 내니 말이다.

밥알이 붙어있는 포슬포슬 잘 익은 감자. 참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고향, 어머니, 가난했던 집안 환경...그 속에서 낙천적으로 살며 꿈을 좇아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삶은감자 한 알에도 내 삻의 편린이 그렇게 깊숙이 들어 있었다.

지금 당신에게 영혼의 음식(soul food)은 무엇인가?! 이 가을, 원초적인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기꺼이 식탁에 올려볼 것을 권한다.

<이슈인팩트 대표기자.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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