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단상] 흐드러진 꽃들의 향연, 봄날은 간다
[봄날 단상] 흐드러진 꽃들의 향연, 봄날은 간다
  • 이완재 기자
  • 승인 2019.04.14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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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벚꽃 앞다퉈 피니 우리의 인생도 농익어
14일 경기도 의왕시청 앞에서 펼쳐진 의왕벚꽃 축제 현장(사진=이완재 기자)
14일 경기도 의왕시청 앞에서 펼쳐진 의왕벚꽃 축제 현장(사진=이완재 기자)

[이슈인팩트 이완재 기자] 봄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꽃들이 경쟁적으로 피어난다. 산수유, 생강꽃, 개나리, 진달래를 필두로 꽃들이 릴레이 화투(花鬪)를 펼치더니 요사이 목련도 끝물이고,지금은 절정의 벚꽃이 만개하여 그야말로 독무대다. 사쿠라라 하여 일본 국화라고 폄하하는 이도 많지만 봄을 상징하는 가장 화려한 꽃으로 벚꽃만한 꽃이 또 있을까 싶다.

실제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봄나들이로 꽃구경 가고자 채비할 때도 벚꽃이 흐드러진 꽃을 단연 후보 일 순위다. 기자도 어제 오늘 수도권 인근 벚꽃 명소로 불리는 곳 두어 곳을 찾아 실컷 벚꽃의 매력에 빠져봤다. 밤사이 돌풍을 동반한 비가 온다고 하여 꽃들이 죄다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다행히 비바람이 거세지 않아 오늘도 집 주위 하천변엔 만개한 벚꽃이 활짝 피어 산책길에 친구가 되어 준다.

꽃들에 취해 아련해지니 문득 20대 약관부터 이립의 나이 30대적 혈기 왕성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소싯적 나름 문청시절엔 괜한 객창감에 사로잡혀 꽃 본다고, 시인들 본다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남녘을 꽤나 찾았다.

맘만 먹으면 훌쩍 2~3일 백팩에 카메라와 수첩 하나 챙겨들고 떠날 수 있었던 호기로운 시절. 버스표 한 장, 기차표 한 장이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굽이굽이 섬진강가 흐드러진 벚꽃을 맘껏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 뿐인가 벚꽃 필 무렵 맛볼 수 있었던 구례 강벚굴에 광양 섬진강 재첩국까지 먹거리 또한 알찼다. 전남 광양 다압면 매화축제에 가면 지금은 전국구 유명인이 다된 홍쌍리 아줌마가 새색시처럼 수줍게 나그네를 맞이해 주었다.

전북 순창 진메마을 김용택 시인부터 모악산 박남준 시인, 지리산 자락 이원규 시인까지. 남녘에 터 잡고 절창의 시들을 토해내는 문인들을 성지순례하듯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도심의 각박한 경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면 그 일상의 한시적 일탈과 파괴가 주는 달콤함은 꽤 컸다.

바흐의 무반주첼로곡이나 쇼팽의 야상곡,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같은 피아노연주곡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섬진강가를 따라가다보면 극치의 평화로움을 접견하게 된다. 접신이 아닌 행복의 접견 말이다.

저녁 무렵 노을이 내려앉은 섬진강 물줄기는 또 얼마나 서럽고 포근하던가. 지금은 추억이 된 젊은 시절 홀몸 여행. 이상한 일은 혼술, 혼밥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와 세태는 웬일인지 여행만큼은 홀로 떠나길 주저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길 떠나 자기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고 과거 현재 미래를 성찰해보는 시간이 몹시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다.

14일 경기도 의왕시청 앞에서 펼쳐진 의왕벚꽃 축제 현장(사진=이완재 기자)
14일 경기도 의왕시청 앞에서 펼쳐진 의왕벚꽃 축제 현장(사진=이완재 기자)

육신의 퇴화가 용기와 모험까지도 덩달아 물귀신처럼 붙들고 정신을 늙고 움츠리게 만드는 까닭이리라. 얼마 전 한 강연에서 도울 김용옥 선생이 모험정신을 강조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양 시인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도 떠오른다. 결국 정신이 젊어야 하거늘, 나이들수록 덩달아 마음마저 늙어가는 것은 영원히 우리 인간이 풀어야할 숙제 같은 것이지도 모를 일이다.

일체유심조...! 젊게 사는 일은 결국 마음을 젊게 하고 사는 일이 아닌가 싶다. 생각나고, 하고 싶은 일을 곧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와 모험심을 늘 견지하며 살고 싶다!

문득 섬진강에 가고 싶다! 벚꽃, 매화꽃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떨어지며 애간장을 녹이던 20대 추억 속의 아련한 섬진강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옛 가요 한 구절처럼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꽃향기에 취하다보니 이렇게 또 청춘도 지나간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 늙어가는 것이 아닌, 익어가는 것이라 마음을 고쳐먹으니 떨어지는 벚꽃 꽃잎에도 그제서야 환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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