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소확행] 가을 모과 이야기 “은은한 모과향(香)에 빠져봐요”
[이것이 소확행] 가을 모과 이야기 “은은한 모과향(香)에 빠져봐요”
  • 이완재 기자
  • 승인 2020.11.03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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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팩트 이완재 기자] 아침 일찍 출근 전 쓰레기 배출을 위해 아파트 처리장으로 나갔다가 모과 2개를 주어왔다. 아파트 단지 내 집 앞에 심어진 모과나무 몇 그루에 모과들이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는 중이다. 그중에 바람에 흔들려 떨어졌거나, 노랗게 익을대로 익어 나뭇가지에서 생을 다한 녀석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한지 3년차가 되다보니 어느새 여기저기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유실수에 열매들이 맺힌다. 자연의 이치란 참 신기하면서도 흐뭇한 감동을 준다. 특별히 관리소에서 제재는 없으니 이렇게 떨어져 잔디밭에 나뒹구는 녀석들은 입주민들이 주어간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마른 헝겊으로 닦아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향도 좋고 제법 그럴싸하다.

유년 시절 시골에서 자라 이맘때쯤 무서리 맞은 잘 익은 모과가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상식쯤은 일찍이 터득했다. 고향마을에서는 늦가을 모과나무에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열매만 남았을 때 긴 대나무를 이용해 모과를 턴 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한 광주리 가득 모과를 주어온다. 그 중에도 크고 때깔이 고와 잘 생긴 놈은 안방에 방향제나 관상용으로 모셔지는 영광을 누린다. 또 몇 개는 대처에서 주말을 이용해 내려온 친지나 매형누나의 자가용 뒷좌석 관물대에 고이 모셔진다. 옛스럽던 그 풍경이 가을정취를 고스란히 보여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보기 드문 ‘응답하라 1980년대’ 쯤의 이야기다.

나머지 대부분의 모과는 동그랗게 썰어 커다란 항아리나 유리병 속에 설탕과 함께 모과청으로 재워진다. 일종에 발효식품으로 일정 기간 숙성을 거쳐 겨울철과 그 이듬해까지 모과차로 끓여 마신다. 기침과 해소천식 등에 좋다하여 마을 어른들이 민간요법으로 애용하던 기억이 있다. 그 향기가 또한 천리를 간다. 같은 방식으로 설탕이 아닌 소주 대병을 몇 개 들이부으면 애주가들이 눈독 들일 모과주가 된다.

포털에서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모과는 모과나무의 열매로 나무에 달리는 참외 비슷한 열매라 하여 목과(木瓜) 또는 목과(木果)라 불린다. 중국이 원산지로 나무 수형이 특이하게 자라기도 해 분재용으로 키우는 농가도 있다. 이 모과가 울퉁불퉁 못 생겼어도 보기보다 참 쓸만한 과일 중에 하나다. 한방에서도 위장을 튼튼하게 해서 소화를 돕고, 기관지염 증세를 완화하며, 신경통이나 근육통, 당뇨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온다. 요즘 대도시 대형마트나 동네 할인마트 식품코너에 가면 이맘때쯤 작은 유리병 속에 모과청을 만들어 판다. 그러나 왠지 출처도 모르는 모과에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졌을 선입견에 선뜻 정은 안간다.

집 안에 들여놓은 모과 두 개가 그 향이 은근한게 코 끝을 간지럽힌다. 천연향이라 인공 공기청향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을의 정취가 단풍낙엽뿐 아니라 이 모과향에도 그득함을 깨닫는 아침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가까운 재래시장을 방문하거나 고향길에 모과 몇 개 구해 집안에 들여놓을 일이다. 모과의 재발견을 통한 색다른 가을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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