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헌 스토리-13] 깊어가는 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도 거자필반(去者必返)
[선재헌 스토리-13] 깊어가는 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도 거자필반(去者必返)
  • 이완재 기자
  • 승인 2022.10.26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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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  선재헌(仙宰軒)에
강원도 평창 선재헌(仙宰軒)에 짙은 가을이 내려 앉았다.

[이슈인팩트/이것이 소.확.행=이완재 기자]  평창 산방 선재헌(仙宰軒)에 어느새 추위가 찾아왔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한 달이나 남았지만 10월 하순 선재헌의 밤과 새벽녘 공기는 꽤 춥다. 초저녁 쌀쌀한 기운에 화목난로에 장작 대여섯 개를 넣고 지피니 훈훈해진다. 군고구마도 몇 개 구어 주전부리 삼으니 운치를 더한다. 이맘 때 평지는 한창 가을 분위기지만 산골마을은 겨울 대비로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기다.

이번 주엔 월동 준비를 위해 산림조합에 장작도 주문해뒀다. 강원도 설악산에는 17년 만에 10월중 대설주의보까지 내린걸 보니 겨울이 머지않았다. 옛 사람들은 겨울을 나려면 기본으로 연탄을 들이고, 김장김치와 된장고추장을 담고 쌀도 한 가마니 준비해놓아야 비로서 발을 뻗고 잤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철 따라 의식주의 중요함이 크게 다르지 않다.

봄에 심어 여름에 수확의 기쁨을 누린 뒷산 텃밭 채소들도 지난 주 내린 무서리에 생을 다했다. 고추와 깻잎, 호박, 오이들의 잎과 줄기가 모두 불에 그을린듯 말라 비틀었다. 갑작스런 한파에 속절없이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아직 먹을만한 풋고추 40여개와 오이 두 개를 건졌다. 그나마 늦여름 장에서 사다 심은 가을상추 몇 포기만이 건재하다. 고춧대와 지지대도 뽑고 텃밭도 휴식기를 위해 정리했다.

마당에 원색의 꽃을 피우던 갖가지 꽃들도 추위에 시들어 말라비튼 채 흉물이 돼 있다. 여름 내내 환한 기쁨을 주었기에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시든 꽃대를 뽑아내고 밑동을 낫으로 베어 정리했다. 내년 봄 다시 찬란히 소생할 것을 알기에 떠나는 아쉬움 보다는 다시 만날 기대감에 웃으며 보낸다.

작열하던 한여름 뙤약볕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선재헌 사방은 울긋불긋 단풍 물결이다. 멀지않은 설악산과 오대산, 치악산 단풍이 절정이라는 얘길 들었다. 우리 부부는 멀리 갈 것 없이 주변에서 단풍을 쉽게 볼 수 있어 행복하다. 마당 한 켠 적단풍도 한창 빛깔이 곱다. 이웃집 화단에 핀 국화와 야생화 ‘꽃범의 꼬리’도 수줍게 피어 산책길 부부의 눈과 발을 붙든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봉평장에서 순대국을 맛 보고 인근 가산 이효석 공원도 둘러봤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장에서 순대국을 맛 보고 인근 가산 이효석 공원도 둘러봤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봉평 5일장을 찾아 먹거리도 사고 국밥에 메밀 막걸리도 한 잔 마셨다. 가산 이효석 공원에서 소설의 향기도 느끼니 잠시 고교 시절 문학청년으로 돌아간 듯 했다. 아내와 국밥 한 그릇에 눈을 그윽하게 마주치며 마신 메밀 막걸리 한 잔의 탁 쏘는 달달함도 좋았다. 선재헌으로 돌아오는 길 사과카페에 들러 사과 한 보따리를 사니 푸짐하다. 빨갛게 주렁주렁 열린 품종 홍로의 달콤한 과즙이 꿀맛이다! 3년여간 심어서 정성껏 가꾸고 가지치기에 잡초제거에 농부의 품이 들어간 잘 익은 사과 5kg이 3만원이면 충분히 싸다. 덤으로 몇 알 더 얹어주는 인심과 농부의 유쾌하고도 친절한 립 서비스까지...단골이 될 사과집을 찾은 것 같다.

날이 추워지니 화목난로가 어느 때보다정겹고 훈훈하다. 어지러운 세상 가까운 이웃과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날이 추워지니 화목난로가 어느 때보다 정겹고 훈훈하다. 어지러운 세상 가까운 이웃과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니팜스의 새 입주민이 된 8호 바깥양반을 만나 잠시 환담도 나눴다. 소탈하고 편안한 새 이웃이 온 것 같아 반갑다. 9호 총무님과는 부부가 나란히 두 집을 오가며 따뜻한 커피와 사과에 수다도 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호 총무님과는 입주 1년여가 지나고 정이 들어 서로 의지하는 이웃이 돼 든든하다. 참 좋은 부부다.

깊어가는 가을은 짧다. 어쩌면 봄 보다도 더 짧은 계절이 가을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가을을 “모든 나뭇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고 표현했다. 만산홍엽의 계절이니 참 화려한 시간이지만 그 끝이 또한 짧고 치열하니 스산함이나 처연함, 애잔한 정서가 동시에 밀려온다. 중독성 강한 장미향과 가시만큼이나 치명적인 매력의 계절이 가을이다.

마치 가슴 아린 시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처럼...

이제 가을을 예쁘게 보내주고 시린 겨울을 맞이하자! 겨울도 가을만큼이나 충분히 짜릿하고 매력적인 계절 아니던가~~!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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