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헌 스토리-15] 텃밭농사 2년차, 뿌린 대로 거둔다
[선재헌 스토리-15] 텃밭농사 2년차, 뿌린 대로 거둔다
  • 이완재 기자
  • 승인 2023.05.16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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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텃밭은 책에 없는 체험 삶의 현장이자 인생 교실"
모종으로 심은 상추와 쑥갓 등 한 달 만에 수확해 밥상에 올랐다. "뿌린대로 거둔다".
모종으로 심은 상추와 쑥갓 등이 한 달 만에 밥상에 올랐다. "뿌린대로 거둔다".

[이슈인팩트 /이것이 소확행] 옛 속담과 격언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이 있다. 글자그대로다. 무슨 일이든 원인 없는 결실이나 결과는 없는 법이다. 작은 텃밭농사가 딱 그렇다.

지난 일요일 반나절 일정으로 평창 주말집을 다녀왔다. 집안 대소사와 개인적인 일로 바빠 좀처럼 발길을 못하다 2주만의 방문이었다. 집 뒷산 10평 남짓 작은 텃밭에 한 달 전 상추와 쑥갓, 호박과 오이 등 이것저것 채소들을 모종으로 옮겨 심었다. 욕심을 내 시금치와 아욱, 부추 등도 한 쪽에 따로 씨로 뿌려 놓았다. 녀석들이 그새 얼마나 컸을까 몹시 궁금해 주말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텃밭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상추는 겹겹이 잎들을 펼치고 딱 쌈 싸 먹기 좋게 커 있었다. 꽃상추, 청상추, 로메인, 적겨자 등 종류별로 심어놓은 상추들이 죽지 않고 자란 것이다. 기특하고 대견했다. 가까이 있는 텃밭이라면 매일 찾아 수시로 물을 주었을 텐데 그럴 수 없어 처음 심고 이틀간 물을 준 게 전부다. 녀석들이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커 준 것이다. 순전히 천수답에 가까운 텃밭이다. 심고난 뒤 2주 뒤에 가서 물을 이틀간 주었고. 그 후 두어 차례 비가 왔을 것이다. 잎과 뿌리에 닿을 수분이라곤 아침저녁으로 나뭇잎에서 떨어진 이슬과 서리가 전부였을 터. 작물의 주인으로서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훌륭한 수확의 기쁨을 주니 더더욱 고맙고 반가웠다.

아내를 불러 녀석들을 따도록 하고, 나는 다소 늦은 고추모종과 토마토, 열무씨를 추가로 심고 뿌렸다. 농사라곤 젬병인 아내는 구부정하게 앉아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내심 크게 자란 상추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그동안 혹여 텃밭 올라오는 비탈길에 엎어지지나 않을까, 풀숲에 풀독이나 오르지 않을까 싶어 힘든 일은 내가 다 하고 잘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확거리가 생겼으니 얼른 자랑부터 하고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인지라. 상추잎들을 다 따니 까만 봉지 한 가득이다.

시골집 작은 텃밭에서 부부가 나란히 무언가를 따고 심고 가꾸는 모습이 내겐 로망일 때가 있었다. 그 로망이 현실이 돼 있으니 이또한 즐거운 일이다. 

텃밭농사 2년차...땅 갈아엎고 퇴비를 넉넉히 주고 시작을 단단히 했다.
텃밭농사 2년차...땅 갈아엎고 퇴비를 넉넉히 주고 시작을 단단히 했다.

올해 텃밭농사 2년차인데 작년과 비교해서는 엄청난 양의 첫 수확이다. 올해는 특별히 양평 지인 분의 도움으로 시작부터 제대로 밭을 갈아엎고 20kg짜리 퇴비를 4포대나 뿌리는 등 공을 들였다. 땅심이 좋아진 건지 그 노력이 허사가 아닌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봉지 가득 따온 상추며 쑥갓이며 모둠채소는 도시 집으로 와서 비닐에 잘 싸 냉장고에 보관하니 일주일 넘게 먹어도 아직 싱싱하다. 따로 농약 비료를 하지 않았으니 식감과 섬유질이 시중 마트에서 사온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유기농 채소를 손수 길러먹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덕분에 상추겉절이며 삼겹살 쌈 등 밥상도 건강식으로 풍성해진다.

텃밭은 지금 씨로 뿌려놓은 아욱과 시금치가  빼곡히 뿌리를 내리고 초록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다. 호박과 참외, 오이만 잘 자라주면 그야말로 올 여름 채소 종합백화점이 될 것이다.

한 달 전 파종해 놓은 아욱과 시금치가 제법 자랐다.

도심의 주위 사람들을 보면 교외에 몇 만 원씩 자리세를 내고 주말농장에 나간다. 운동 삼아 소일거리도 되고 작물들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니 한 철 주말 텃밭농사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전원에서 취미생활도 하고 식구들의 밥상에 무공해 유기농 채소를 먹거리로 올릴 수 있으니 1석3조다.

나의 경우는 제대로 된 텃밭 하나를 짓고 있으니 아마추어지만 준 농부나 다름없다. 내게 주말집 텃밭은 작은 자연 체험 학습장이자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수양터이기도 하다. 말 없는 채소들이 주인이 심고 물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묵묵히 자라 먹거리를 내어주니 이만한 소확행이 따로 없다.

거기에 숲, 바람, 하늘, 맑은공기, 새 소리는 덤으로 만끽한다. 흙을 파서 일구며 적당히 땀까지 흘리는 유쾌한 노동이 함께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의 세상이 여기에 있다. 

그야말로 뿌린 대로 거두는 텃밭농사는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자, 인생 교실이다.

 

* 주말집 '선재헌'(仙宰軒)은 필자와 아내의 이름 각 한 글자를 합성해 만든 집 이름이다. 평창 해발 700미터 산중에 자리잡은 그 곳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는 부부의 작은 일상을 소확행으로 풀어놓은 것이 '선재헌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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