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바야 ‘고려의 언어와 지리’ 출간
나무바야 ‘고려의 언어와 지리’ 출간
  • 정선 기자
  • 승인 2023.09.0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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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언어와 지리’ 표지
‘고려의 언어와 지리’ 표지

[이슈인팩트] 도서출판 나무바야에서 9월 6일(수) 3인의 글을 모아 ‘고려의 언어와 지리’를 출간한다.

신간 ‘고려의 언어와 지리’는 3인의 연구 논문으로 꾸려지는데 첫 저자인 신현철은 순천향대학교 명예교수로, 평생 식물학을 연구했다.

두 번째 저자 최범영 박사(소벌 가리소모로)는 시와 소설을 비롯해 지질학과 인문학 분야 논문을 다수 펴냈다. 세 번재 저자 김윤태 박사는 문학평론으로 평생을 바친 학자다. 이들 3인의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함께 겪은 서울대 동문이기도 하다.

책에는 △향약구급방에 근거한 삼국유사에 나오는 식물명 산(蒜)의 재검토 △고려 시가 참회업장가의 어휘와 해독 △불경에 쓰인 고려어 △자전적 성장소설의 의미와 한계 △거란과 여진 사료로 본 고려의 북쪽 경계 등의 논문과 △요나라 동경 지방의 지리 △금나라 동북지방의 지리 등의 지리지 자료가 수록돼 있다.

책 ‘고려의 언어와 지리’의 특징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단군신화에 나오는 산(蒜)은 마늘이 맞을까?

식물학자인 신현철 교수는 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향약구급방’에 나오는 여러 종류의 산(蒜)을 산달래, 달래, 마늘 등과 비교 검토해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다.

◇ 고려어는 현대국어와 얼마나 달랐을까?

고려어는 ‘전기중세국어’로 분류되지만 저자는 거란어, 여진어, 몽골어를 공부한 학자로서 이들 언어와 같은 시대의 한국어를 고려어라고 놓았다. 언어는 시간과 공간의 함수다. 현대에 사는 한국인이 고려시대 언어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매우 낯선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저자는 전기중세국어라는 용어 대신 고려어로 부르고 있다.

고려어 자료로는 일단 고려 향가를 꼽을 수 있다. 향가 해독은 오랜 숙원이다. 저자는 2012년 구결학회 학술대회에서 같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이를 수정·보완해 이 책에 냈다.

고려어 자료 가운데 불경 등에 고려글자로 적힌 것도 있다. 고려가 발명한 것 가운데 한국어와 어순이 다른 한문 문장을 한국어 어순으로 번역해 읽을 수 있도록 한 장치인 석독구결이 있다. 구결학회에서는 2009년부터 2022년까지 꾸준히 석독구결 자료를 갱신하며 공개해왔다. 한자와 고려글자로 적힌 원문을 저자는 고려시대 언어에 가깝도록 한글로 제시했으며, 구결학회의 번역문과 저자의 번역문도 함께 실었다.

◇ 한설야의 소설‘탑’에 대한 평론

김윤태 박사는 1940년대 매일신보에 연재됐던 한설야의 소설 ‘탑’에 관해 자전적 성격과 고향의 발견, 가출 모티브와 반봉건성, 가족사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봤다. 특히 이 소설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1907년 홍범도, 차도선의 의병 봉기에 대응을 잘해 함경도 삼수군 군수를 제수받지만 의병들이 두려워 부임하지 못하고 함흥 부근에서 배를 타고 원산을 거쳐 부산으로 가서 다시 서울로 기차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 등을 묘사하고 있다.

◇ 거란과 여진 사료 속의 고려 북쪽 경계

10~13세기의 동아시아는 매우 변화가 심한 때였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망하고, 거란에 항거하던 발해 지역의 생여진을 주축으로 금나라가 세워졌다. 이후 몽골이 세계지도를 완전히 바꿔 놓으면서 요동치던 국경선의 변화는 일단락됐다. 저자 소벌 가리소모로(최범영)는 거란어 묘지명과 여진어 비문, 석각 등과 ‘요사’ 지리지, ‘금사’ 지리지에 소개된 고려의 영역 등을 분석해 원나라 이전의 고려 국경에 대해 분석했다. 1091년 지어진 거란 사람 쉬머 틀거이안 호토그니의 묘지명에는 툴루르가 고려 땅으로 적혀있다. ‘용비어천가’에서 함경도 단천(고려 때 이름은 복주)이 ‘툴우’이므로 ‘툴루르’가 단천일 것으로 봤다. 이것이 맞는다면 윤관의 9성을 쌓기 이전에도 거란 사람들은 단천 일대 함경도 지역을 고려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141년 세워진 ‘경원 여진글자 비’에는 두만강 일대의 땅이름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은 할란원(Xalan won)과 수핀원(Sufin won)이라는 광역 행정 구역에 속한다. ‘금사’ 지리지를 보면 할란원은 합라로(合懶路) 또는 갈라로(曷懶路)라고도 하는데, 금나라 상경(하얼빈시)에서 동쪽으로 1800리에 있고, 동남쪽으로 500리에 고려가 있다고 적고 있다. 할란원의 치소는 현재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일대로 추정된다. 무단장시에서 하얼빈시까지 약 300km임을 볼 때 500리는 약 80km쯤이고, 무단장시에서 동남쪽 500리에는 고려의 공험진, 선춘령, 거양성 등이 있었다.

윤관 장군은 1107~1109년 사이 두만강 북쪽 선춘령에서부터 함경도 함흥 일대까지 함주 등 6개 주와 공험진 등 3개 진을 건설하는데, 이를 윤관의 9성이라 부른다. 1109년 여진족은 윤관 9성을 돌려줄 것을 청하기 위해 외교 담당을 고려 조정에 보냈다. 여진족은 자신들이 고려에서 왔고, 또 고려를 상국으로 모셔 조공해왔다고 주장하자 고려 정부는 윤관의 9성을 여진족에게 돌려줬다. 특기할 만한 일은 ‘금사’ 지리지에는 이 지역을 금나라 땅으로 넣지 않았으며, 고려의 땅으로 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1189년 할란원이 폐지되기도 했다.

‘북청 여진글자 석각’은 고려가 번창하길 빌며 리량 사람들이 북청을 방문해 글을 남긴 것인데, 석각이 있는 곳 일대가 한때 금나라 ‘고피 밍간’이었던 것을 회상하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려로 이주하고 있는 장면으로 저자는 해석하고 있다.

‘요사’ 지리지에는 거란의 신주(信州)가 고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고 했는데, 신주는 군사적으로 황룡부에 예속돼 있어 길림성 부여현에 있던 황룡부와 가까운 곳일 것으로 봤다. 장춘 일대였던 것으로 보이는 신주의 위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요사’ 지리지는 이곳 가까이까지 고려 땅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여진은 고려와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언어학적으로 중세국어의 음운규칙이 만주어에는 보이지 않으나 여진어에는 적용되기도 한다면서 이는 친밀한 관계를 넘어 한 개의 생활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 요나라 동경지역과 금나라 동북지방 지리

‘요사’와 ‘금사’ 지리지 가운데 고구려, 발해, 고려 지역의 지리를 서술한 부분이 포함돼 있는 지역에 대해 원문과 번역문을 실었다. ‘요사’ 지리지에는 발해를 멸시하는 표현이 있으나 발해에 관해 상세한 설명이 있어 발해의 모습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춰 번역문을 준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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