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소확행] 서민밥상 시그니처 ‘시래깃국’을 아시나요?
[이것이 소확행] 서민밥상 시그니처 ‘시래깃국’을 아시나요?
  • 이완재 기자
  • 승인 2021.01.0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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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음식 시래기된장국...전라도는 실가리국.경상도는 시락국
"유년의 추억 깃든 용진이 어머니 실가리국 한 그릇 액자속으로"
서민밥상의 시그니처 시래깃국.(사진=이슈인팩트)
서민밥상의 시그니처 시래깃국&시래기국밥 한 그릇.(사진=이슈인팩트)

[이슈인팩트 이완재 기자]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 이맘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시래기된장국이다. 고향인 전라북도 동남부 임순남(임실.순창.남원의 통칭) 쪽에서는 ‘실가리국’이라고 부른다. 경상도 통영 쪽에서는 시락국으로 부른다.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의 방언이다. 시래깃국은 주 재료인 무청 잎이나 배추겉잎을 이용해 끓이는 것이 정석이다. 늦가을에 수확해 삶거나 또는 직접 말려 저장해뒀다, 추운 겨울철 비타민 보충원으로 활용했다. 냉장고 같은 저장수단이 열악했던 옛날 조상들의 지혜의 식재료다.

시래기밥으로도 먹고, 생선조림 할 때는 훌륭한 부재료로 쓰인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갈아 끓이는 추어탕에 시래기는 조연이 아닌 주연급 식재료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저장성도 좋고, 특유의 섬유질은 소화를 돕는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KBS 인기 교양물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인 최불암 씨가 강원도 양구 펀치볼에서 나는 시래기를 소개한 이후 부쩍 더 유명해졌다.

전라도 고향 마을에서는 부지런한 아낙들이 추운 겨울 집집마다 아침저녁으로 큰 가마솥에 시래기된장국을 그득 끓여냈다. 그렇게 끓인 국은 하루 이상 다음 날까지 온 가족이 질리도록 먹는 게 보통이었다. 밥과 국이 한 세트처럼 공식화 된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던 최고의 일상 메뉴였다. 무엇보다 가을걷이나 김장을 끝내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식재료가 무청과 배추 우거지라 자연스럽게 단골 국거리로 자리매김했다.

나이 지긋한 장년의 노인들은 너무 많이 먹어 물리고 질려서 된장국이나 시래깃국을 거부하는 경우도 보았다. 남루하고 가난했던 시절 애증이 덧칠된 곤궁의 음식이자, 트라우마의 매개가 되었을지도 모르니 본능적인 거부가 무리도 아니리라.

내 경우 다행이 아직도 겨울 되면 이 음식이 끌리는 걸 보면 적당히 좋은 추억의 음식으로 남은 모양이다. 별 수 없이 물리적인 세대 차이가 확인되는 시절의 음식들...보리밥이 그렇고 쑥개떡, 수제비, 술지게미,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이 그렇다. 그런 배고픔을 상징하던 음식들이 지금은 건강웰빙 음식으로 소환되는 걸 보면 격세지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래기국 역시 그런 음식이다. 고향 우리 바로 뒷집 용진이 어머니가 아침이면 굴뚝에 연기를 하얗게 뿜어내며 일착으로 밥을 짓는데 어김없이 구수한 된장냄새 진한 이 시래깃국도 함께 끓였다. 어느 해 겨울엔가는 용진이 어머니 시래깃국이 맛있어 일주일이면 두 세번씩 그 집을 도장 찍듯 찾았다. 그때마다 용진이 어머니는 넉넉한 인심으로 늘 큰 대접에 국 한 그릇과 밥 한 공기를 차려 주셨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많이 먹어라. 우리 용진이 용현이랑도 사이좋게 지내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나와 고작 한 살 터울인 용진이는 낳자마자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를 절었는데 아마도 그런 아들의 걱정과 보살핌에 대한 각별한 당부였으리라. 그 집 시래기국은 어찌나 맛이 좋았던지 밥 한 공기 말아 섞박지나 깍두기, 배추김치 길게 한 가닥 올리면 뚝딱 한 그릇 해치웠을만큼 일품이었다. 요즘 시쳇말로 순삭은 기본이었다. 

시래기 무 잎은 식감이 부들부들하고, 진한 된장은 가끔 투박하게 콩알갱이가 씹히는 구수한 맛을 낸다. 큼직한 국물용 멸치까지 넉넉히 들어간 진한 시래기된장국은 감칠맛이 뛰어났다. 여기에 조선간장에 절인 고추를 몇 개 쫑쫑 썰어 넣으면 적당히 맵고 칼칼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시래깃국은 밥 한 공기 통째로 넣고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말아, 머슴처럼 퍼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기호에 따라 국물을 넉넉히 말아도 좋고, 자작하게 먹어도 좋다. 특유의 짭조름한 된장기가 밥알 하나하나에 배어 우거지와 함께 씹으면 목 넘김도 좋고 금새 배가 불러 온다. 밥알 한 톨까지 싹싹 긁어먹던 겨울철 최고의 별미이자 그만한 서민식이 따로 없었다.

부엌 아궁이에 가리나무, 장작불 피워 밥 안치고 국 끓이면 뒤안 모퉁이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던 정겨운 고향풍경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속절없이 액자 속에 갇혀버린 풍경은 어쩌다 마주하는 도심의 시래기국밥집이나 정통 사극에서 마주 한다. 그것은 흡사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일이다.

요즘처럼 한파에 폭설이라도 내리면 속을 든든히 채워 주던 그때 그 시절 시래깃국 한 그릇 간절해진다. 밥상에 구수한 시래기된장국 한 그릇 올려 코로나19와 한파의 시름을 잠시 잊자. 잃었던 밥맛도 돌고 밥심이 절로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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