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소확행] 여름음식 이야기 유년의 추억 한 그릇 '다슬기탕'
[이것이 소확행] 여름음식 이야기 유년의 추억 한 그릇 '다슬기탕'
  • 이완재 기자
  • 승인 2023.08.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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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식 민물다슬기탕 한 그릇.(사진출처=다음 카페)
전라도식 민물다슬기탕 한 그릇.(사진출처=다음 카페)

[이슈인팩트] 내고향 전라도 순창에서는 여름철이면 보양식으로 먹는 음식이 있다. 이 지역 방언으로 대사리탕으로 불리는 바로 다슬기탕(국)이다. 순창은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몇 안되는 군 중에 하나다.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발원해 임실, 순창, 곡성, 하동을 거쳐 광양만 남해바다로 흘러나가는 섬진강 212.3km의 경유지이기도 하다.

고향마을 사람들은 인근 임실군 물우리와 진메마을 근처, 동계면 장구목이나 큰물로 불리던 적성면 지붕리 쪽 강변 강바닥에서 자라는 민물 다슬기를 무시로 잡아 탕으로 끓여먹곤 했다. 특히 여름철이면 집집마다 작은 양파망 한 가득 잡아 다슬기탕을 해먹고 여름 한 철을 났다. 
 
섬진강 줄기 곳곳에 서식하는 다슬기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여름 보양식 재료가 되었던 것이다. 뜨거운 햇빛이 한창인 낮에는 더위를 피해 모정이나 당산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던 마을 어른들은 밤이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섬진강가로 나가 물놀이 겸 다슬기를 잡았다. 다슬기라는 놈이 특히 밤에 촉수를 드리우며 새까맣게 강바닥을 기어다니는 야행성을 지니고 있어 많이 나올 때는 성인 손으로 대여섯 번  쓱 쓸어담으면 꽤 많은 양을 잡아냈다. 

이 지역 사람들의 투박하면서도 맑고 서정적인 순수한 삶의 이야기들은 지역 출신이자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의 산문집 <섬진강 이야기 1, 2>에 잘 묘사돼 있다. 시인이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보고 겪은 섬진강변 진메 마을 사람들의 질펀한 삶의 편린들이 백화점식 스토리로 엮여 흥미롭게 펼쳐진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마을과 기자가 나고 자란 고향집이 차로 불과 15분 안팎이니 유년의 추억과 기억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엊그제 휴일을 이용해 고향 노모를 뵈러 아내와 1박2일 고향집을 찾았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다슬기탕 잘 하는 집에 들러 뜨끈한 다슬기탕 한 그릇을 먹고왔다. 큰형님이 추천하는 임실군 강진면 한 식당에서 온 가족이 점심으로 다슬기탕 정식을 먹은 것이다. 큰 가마솥에서 끓여낸 푸른 빛이 진하게 우러난 국물에 다슬기 알맹이와 채 썰어넣은 애호박 등이 대접 한 그릇 담겨 나왔다. 이 지역 사람들에겐 여름이면 아주 익숙한 음식이기에 대접째 들고 국물을 훌훌 마시거나 공기밥 한 그릇 말아 한 수저 떠 입안 가득 욱여넣으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내 소년기에 어머니도 다슬기를 잡아오면 이렇게 애호박을 썰어넣거나 호박이 없을 때는 부추나 아욱, 시금치 등을 넣고 끓여주시던 기억이 아련하다. 국의 밑간은 조선간장을 써야 또한 제 맛이다. 밀가루 반죽해 뚝뚝 던져넣고 끓이면 다슬기수제비가 된다. 어떤 집은 집된장을 몇 숟가락 풀어넣고 끓이는 집도 있다. 된장이 민물 다슬기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살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다슬기탕의 정석은 역시 해감된 다슬기를 그대로 통째로 끓여내 푸릇한 진한 육수가 나온 것이어야 제대로 끓였다는 소리를 듣는다.

추억의 다슬기 알맹이 까기.(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추억의 다슬기 알맹이 까기.(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다슬기를 많이 잡은 날엔 온 가족이 평상에 둘러앉아 삶은 다슬기 알맹이를 일일이 싸리 빗자루를 꺾어 만든 꼬챙이로 빼는 것이 일이었다. 그렇게 수고롭게 빼낸 알맹이를 어머니는고추장 몇 숟가락과 식초를 약간 넣고 부추 회무침으로 해주시기도 했는데 그것이 또 별미 밥반찬이었다. 부산이 고향인 옆지기 아내도 내 영향으로 이젠 다슬기탕을 제법 잘 먹는다. 가끔 캠핑을 갔다 청정 지역 강원도나 충청도 쪽 산골에서 재미삼아 잡아온 다슬기를 집에서 끓여먹던 가락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젠 고인이 되신 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말아 훌훌 털어넣던 추억의 다슬기탕이 성인이 되어서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통과의례처럼 찾아먹어야하는 음식이 되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도 이런저런 다슬기탕 전문집이 많지만 아무래도 고향에 가서 직접 먹는 다슬기탕만 할까. 모처럼 어머니와 형님들 조카까지 한 가족이 다 모여 뜨끈한 다슬기탕 한 그릇 먹고오니 남은 늦더위도 거뜬할 것 같다. 추억의 음식, 밥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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