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소확행] 주먹밥 한 덩어리
[이것이 소확행] 주먹밥 한 덩어리
  • 이완재 기자
  • 승인 2023.07.10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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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팩트 에세이] 초여름 더위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며 기승이다. 아침부터 돌풍과 함께 기습적인 폭우까지 내려 고온다습한게 여간 불쾌한 게 아니다. 느지막이 출근길에 오른 날, 허기가 느껴져 간단한 요기거리를 찾다 주먹밥 하나를 샀다. 지난 밤 더위에 잠을 뒤척인 터라 식욕도 뚝 떨어졌다. 브런치로 주먹밥은 적당한 메뉴다.

수제로 만들어 비닐랩으로 쌓은 멸치 주먹밥 한 덩어리가 단돈 2,000원이다. 고물가 시대에 착한 가격이다. 요즘 점심 한 끼 먹는데도 어지간한 메뉴는 1만 2,000원이 기본이다. 

주먹밥 한 덩어리를 손에 쥐니 보기보다 달리 제법 묵직한게 작은 햇반 무게만 하다. 잡곡밥에 참기름 넣고 김가루, 계란, 단무지, 잔멸치 등 이것저것 섞어 뭉쳐 영양까지 고려한게 든든한 한 끼로 손색이 없다. 두세 명 밖에 없는 호젓한 광역버스 안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 곁들여 맛있게 잘 먹었다.

주먹밥의 어원을 찾아보니 말 그대로 주먹으로 쥔 밥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시중 편의점에도 다양한 맛의 삼각김밥이 있는데 일본풍이라 왠지 정이 안간다. 둥글둥글한 맷돌호박처럼 뭉쳐놓은 주먹밥이라야 정과 식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가끔 TV 교양프로에 산 속 자연인이 야생화로 멋을 낸 주먹밥을 들고 산과 계곡에서 먹는 모습은 참 멋스러울 때가 있다. 비빔밥처럼 모든게 조화롭게 다 들어 있으니 따로 반찬 없이 이만한 간편식이 또 있으랴. 이런 주먹밥 문화는 동남아나 중국 등 쌀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주먹밥은 그러고보니 참 지혜로운 음식이다. 옛 조상들이 멀리 여행을 가거나 한양 과거길에 주먹밥을 챙겨 허기를 달랜 걸 보면 그 역사 또한 오래 됐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등 나라에 국난이 닥치면 민가에서 아낙네들이 관군에게 주먹밥을 날랐고,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항전한 시민군에게 지역민들이 건넨 것도 역시 이 주먹밥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한 끼 음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게 해준 거룩한 생명의 양식이다. 가난이 투영되고 풍류까지 깃든 주먹밥 하나에도 우리들 삶의 역사와 애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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