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영화 ‘서울의 봄’과 현실의 ‘서울의 봄’
[데스크칼럼] 영화 ‘서울의 봄’과 현실의 ‘서울의 봄’
  • 이완재 기자
  • 승인 2023.12.06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슈인팩트 칼럼 /이완재의 촌철직언] 평일 아침 시간대 KBS1 <아침마당>을 통해 노래 경연을 시청했다. 도전 꿈의무대 ‘데스 매치’ 편이었다. 이날 심사위원 겸 축하무대에 선 트로트 가수 설운도의 피날레에 가까운 절창의 노래를 접했다.

특유의 단정한 머리에 정갈한 수트핏의 베테랑 가수 설운도가 부른 축하곡에 출연자들은 일제히 숙연해졌고, 감탄과 존경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아직은 아마추어 가수지만 나름 앞서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던 수준급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수 십년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는 대고참 실력파 선배 가수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노래 한 곡에 현장은 일시에 초토화됐다. TV를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본 시청자들도 전율했다.

모름지기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전문가의 포스란 것은 이런 것이다. 전문가나 실력자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굳이 불필요한 설명이나 어쭙잖은 곁가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 평소 자신이 쌓아온 내공을 내뿜는 퍼포먼스 한 번이면 좌중은 절로 숙연해지고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게 되는 것이다.

세대와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요즘 우리 시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더욱 그것을 실감한다. 대한민국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소위 정치권의 정치인들이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과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입법부의 전문가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온통 허울의 가면을 쓴 껍데기 공인들 뿐이다. 다들 정권쟁취만을 위해 이전투구와 상스러운 시정잡배식 싸움에만 혈안이 된 범부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개인의 권력과 탐욕, 안위가 목적인 사람들을 믿고 어떻게 국민이 안심하고 그들을 지지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비전문가 정치인 출신으로 박빙의 표 차로 대통령직에 올랐으면 배우는 자세와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겨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임기 2년 내내 진영싸움에 매몰돼 제 식구만 감싸고 독재에 가까운 저급의 정치를 일삼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격과 내치, 나라경제와 민생은 엉망진창이 된지 오래다. 국민 대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하는 대통령의 막중한 임무에 여전히 감을 못 잡고있다. 안타까운 대한민국 1호 공직자의 모습이다. 

요즘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몰이 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는 1979년 12.12 사태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찬탈하고 유린한 반란 수괴 전두환의 군사 쿠테타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당시의 시대상과 현 정권의 검사들에 의한 억압의 모습이 흡사 오버랩된다해 혹자는 ‘신군부’에 비견되는 ‘신검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너도나도 극장가로 몰려들며 영화는 신드롬 조짐이다. 덕분에 한동안 침체했던 극장가와 한국영화 시장에 모처럼 훈풍이 돌고 있다. 영화의 인기와 열풍은 반가운 일이지만 속내는 어딘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지금 우린 목도하고 있다.

세상사 모든 곳에 전문가만 있을 수는 없다. 아마추어 비전문가가 다수이고 소수의 전문가들이 이들을 이끄는 구조가 보편적인 세상의 틀이다. 그래서 그 소수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욱 전문가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역할을 다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 전문가가 아니라면 전문가가 되려고 용트림을 해야한다. 그래야 진정한 카리스마를 갖춘 묵직한 존재감의 전문가가 될수 있다. 그래야 다수의 갑남을녀 장삼이사들이 행복할 수 있다.

2023년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전문가들이 부재한 시대, 게으르고 탐욕만 가득한 무능력자들이 전문가입네 행세하고 사는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는지. 내년 봄 개나리꽃 진달래꽃 화사한 ‘서울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지 여전히 현실은 어둡고 무겁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