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빈의 시대 관통] 한일정상회담 총평, 자국민 ‘한 사람’ 외면한 실패 외교
[백현빈의 시대 관통] 한일정상회담 총평, 자국민 ‘한 사람’ 외면한 실패 외교
  • 이슈인팩트
  • 승인 2023.03.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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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한-미-일 3자 공조에만 집착...한-일 관계, ‘당사자성’ 생각한 외교 절실
백현빈 마을의인문학 대표
백현빈 마을의인문학 대표

[이슈인팩트 칼럼/ 백현빈 마을의 인문학 대표] 언제까지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킬 것인가. 국가의 외교와 안보 문제에서 국민은 그저 장기판의 ‘졸(卒)’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인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우리 국민에게 우리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제3자 대위변제’ 방식으로 보상하도록 한 이번 윤석열 정부의 보상안은 피해자의 당사자성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 외교에서 국가와 개인, 거시와 미시를 함께 아우르는 전략은 더욱 더 절실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피해에 관한 일차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 식민지배는 기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사건이다. 전쟁과 같이 국가 간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양자 모두에게 책임의 무게를 가늠해 볼 여지도 있지만, 식민 지배는 착취-피착취의 구도가 명확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으로 보자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기준에 맞는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일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의 처지와 입장을 어떻게 어루만지고 치유할 것인가.

가해자 입장에서 흘러나오는 기조 중에 우리 스스로의 무능으로 국민이 피해자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국민을 지키지 못한 조선 정부가 가해자이고 국민이 피해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정부가 이제라도 당시 희생된 우리 국민에게 책임을 갖고 배상할 의무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보상안은 우리 내부의 해결 방식 위주로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강제 합병과 수탈을 한 일본이 한국에 취해야 할 해결책은 아니다. 당시 조선 정부가 무능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선의 일인 만큼 타국인 일본이 손가락질하거나 침략을 정당화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일본 또는 그 입장을 옹호하는 시각에서는 일본이 한국에 여러 인프라를 건설하는 등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근대화라는 것이 원활한 ‘수탈’을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했기 때문에 이뤄진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무능으로 인한 간접적 피해와 별개로, 일본의 명확한 가해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근본적으로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 한국에게 충분히 보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부의 보상안은 후자를 임의로 소거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정상 국가의 척도는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심’임을 믿는다.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현실적으로 모든 사상자 개개인을 살피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세습체제 유지에 전력하는 북한이 궁핍한 다수 국민을 살피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과 달리 대한민국이 정상 국가라면, 더욱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 나라라면,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마음을 헤아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제발전의 밑천이라도 얻어 보자는 절박함으로 체결했다고는 하나 40여 년 간의 수탈과 피해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배상금과 의심의 여지가 있는 진정성은, 아직까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의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면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 라고 일본을 지칭했다. 그러나 과연 일제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도 그렇게 거국적인 파트너십을 말하고 글로벌 협력을 논할 수 있을까. 인생이 일제에 의해 송두리째 무너지고 아직도 피해 사실을 부정당하며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자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지 못하는 비정상 국가의 논리는 바꾸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이번 사례를 통해, 외교의 영향을 받는 국민 개개인뿐만 아니라 외교를 주도하는 주체 개개인에 대한 관심도 필요함을 다시금 환기하게 된다. 보수 정권에서 이루어졌던 한-일 군사보호포괄협정(GSOMIA) 체결과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는 단순히 우리의 집권 정부가 친일 성향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한-미-일 3자 공조 관계에서 주도 국가는 미국이며, 미국은 일제 수탈의 제일 큰 피해자 한국의 정서적 아픔과 별개로 한-일 관계가 덜 껄끄럽기를 바란다. 상대적으로 한-미 동맹을 더 강조하는 한국 보수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런 의견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미국의 외교 전략에는 매우 긴밀한 미-일 관계가 바탕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국가 간 외교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은 소위 ‘국화파’라고 하는 지일파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키우기 위해 여러 자원을 투입해왔다. 일본의 로비력으로 미국을 움직이고 그렇게 움직여진 미국의 뜻을 우리가 따라가는 이 구도의 외교로는 우리 국민의 진정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없다.

우리의 글로벌 외교에서도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고려가 더욱 필요하다. 자주적인 외교를 위해 ‘지한파’를 곳곳에서 육성해야 한다. 나아가 일본의 과거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불가역적인’ 반성과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미국, 일본, 중국 등 기존의 주요 국가 외에도 전 세계 여러 국가와의 확대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 보인다. ‘한-미-일’만으로 외교의 기틀을 잡기엔 세계가 이미 다원화되고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개별 국가, 개별 구성원 속까지 스며들어 ‘코리안 파워’를 높이는 외교 전략이 더욱 절실하다. 외교의 주체든 대상이든 모두 개개인의 관점으로 보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한 사람’의 외교를 다시 생각한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과 조피 초테크 폰 호엔베르크 여공작 부부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kniefall’) 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이 피해자와 국제사회 앞에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이 보여주는 의미는 컸다. 그만큼 개인의 가해와 피해, 결단과 행동은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협상 문제를 비롯해 윤석열 정부의 대일 관계가 지향하는 ‘미래지향적이고 거국적인’ 외교에서 ‘한 사람’의 가치가 경시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한 사람의 고통을 ‘일개’ 개인의 고충쯤으로 여기고 지나친다면 그 고통이 모여 사회적 고통과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그 무게를 생각할 때이다.

 

<백현빈의 시대 관통>은 청년 문화기획자이자 동탄의 젊은 정치인 백현빈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사는 이야기이자 이슈 톺아보기 입니다. 지역의 이웃과 함께 소통하는 공감의 장(場)입니다. 날선 지성으로 깨어있는 청년 백현빈만의 날카로운 통찰과 사람 냄새 나는 숨결을 독자와 함께 합니다.

 

▶ 백현빈

-<마을의 인문학> 대표

-서울대학교 정치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화성시 청년정책위원장 · 주민참여예산위원회 5기 교육복지분과위원장 · 노동자권리보호위원

-경기도 주민참여예산위원회 문광복지분과 위원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예산자문위원회 연구회장 역임

-더불어민주당 청년명예국회의원(기재위 부위원장) 역임

-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

-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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